본문 바로가기

short

나를 책임져 上

 

나를 책임져 上

* 지정랩/랩진

 

 

 

 

 

  나는 그를 형성하는 몇 가지의 키워드를 떠올린다. 이른바 '첫 인상'에 속하는 것들. 작다. 눈웃음. 상냥함과 능글맞음의 경계선. 기분 나쁘지 않은 모호함, 복잡하지 않으나 복잡한 것. 지그시 쳐다보는 눈. 벌써 세 번째 참여임에도 아직 그 시선에 면역력이 없는 나는 꾸물꾸물 형의 등 뒤로 숨어 버리고, 삐죽 나온 내 이마에 끈질기게 달라붙던 눈동자. 작고 통통한 손 위로 이어지는 팔뚝이 예상 밖으로 단단했지. 카드를 착착 섞는 손놀림은 야무졌지만 손이 자그마한 탓에, 가끔 한두 장이 멋대로 덧니처럼 삐져나오곤 했지. 그럴 때마다 멋쩍게 웃던 얼굴. 이런 건 어쩔 수 없어요. 그가 카드를 몇 장씩 배분하며 변명하면, 케이크를 굽는 김석진 씨가 웃으며 받아쳤지. 니가 애기손인 걸 누가 모르냐. 왁자한 웃음소리가 퍼진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 익히 서로를 알고 있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움츠러들었지만, 같은 이방인 처지임에도 형은 태평했다. 매주 금요일 밤마다 이렇게 모이는 건가요? 네, 매주는 아니지만, 우린 보기와 달리 불금을 이런 식으로 아아주 건전하게 보내죠. 민윤기 씨가 잔에 라임즙을 짜 넣으며 대꾸한다. 같이 놀아요, 글 쓰는 작가랑 스무 살짜리 애기까지 들어오니 얼마나 신선하고 좋아.

 

아기들 엉덩이에 발라주는 베이비 파우더와 화이트 머스크의 향을 구분할 줄 알게 된 것도 순전히 그의 덕이었다. 흰 솜덩이에 꽃을 짓이긴 듯한 냄새가 그와 잘 어울렸다. 그의 모든 요소가 뭉근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날이 많이 추워졌죠. 달랑 티셔츠 한 장만 입고 내려온 내게 그가 빨간 담요 하나를 건넸다. 형이 그것을 대신 넘겨받아 내 어깨를 꽁꽁 싸맸다. 나는 머쓱한 기분에 눈앞의 술병만 만지작거렸다. 노인의 머리통을 본따 만든 기이한 모양새였다. 금방 히터 틀었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그리고 올드몽크는―그는 거무튀튀한 술이 반쯤 채워진 내 잔을 가져가 콜라를 부었다―이렇게 콜라를 섞어 마셔야 훨씬 맛있어요.

 

만들어 준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억지로 잔을 들었다. 이토록 씁쓸하고 진하고 달짝지근한 술은 처음이었다. 맛있네요. 주억이는 내 얼굴로 다정한 시선이 쏟아진다. 필터가 필요했다. 나는 혼합주를 홀짝이며 유리잔 너머로 형을 찾았다. 형은 옆자리에 앉은 김석진 씨와 도란거리는 중이었다. 도톰한 흰색 후드를 입고 무릎에 핑크색 담요를 얹어 한결 어려 보이는 김석진 씨가 형의 보드카에 사과주스를 섞어주고 있다.

 

금요일 밤. 한 주의 피곤한 일정을 마치고 주말을 앞둔 안도감. 아홉 시를 느긋하게 넘길 즈음이면 그는 일찍 카페 문을 닫고 클로징 팻말을 내건 뒤, 테이블을 합쳐서 여러 명이 모여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참석은 자유였기에 시간이 되는 사람은 왔고 바쁘면 말았다. 두 주에 한 번 모이기도 했고 3주를 연달아 만나기도 했으니 규칙이 없었다. 케이크와 파이를 굽는 김석진 씨가 항상 제일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와 오늘의 간식거리를 그의 품에 안겨 주고, 그 다음으로 나보다 세 살 많은 공대생 김태형 씨, 사거리에서 꽤 큰 댄스 아카데미 강사로 일하는 정호석 씨, 그 뒤를 이어 두세 명이 더 줄줄이 들어오고, 맨 마지막으로 백수 같은 차림새의 프로듀서 민윤기 씨가 털레털레 입장한다. 대단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각자 떠들거나 차려놓은 것을 먹고 마시며 논다. 아무 연관도 맥락도 없는 인연들이 뭉쳐 만든 소규모 동호회와 비슷했는데 형은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를 무척 좋아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카페는 형과 내가 이사한 오피스텔 1층에 딸려 있다. 카페 주인인 그는 3층에 살고 우리는 그보다 한 층 더 위에 있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몇 분 걸어가다 큰 사거리가 나왔을 때 오른쪽으로 꺾으면 김석진 씨가 파티셰로 일하는 케이크 하우스가 보이고, 그 맞은편 건물에서는 정호석 씨가 수강생들을 가르치며,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303번 버스를 타고 십오 분쯤 더 나가면 민윤기 씨의 작업실과 스튜디오가 있고……아침마다 등교길이 힘들다며 울상인 이 동네 토박이 김태형 씨의 캠퍼스는 한 시간을 더 둘러둘러 가야 한다.

 

형은 어렵잖게 그의 카페 단골이 되었다. 글을 쓰다 무언가 좀 그럴 듯한 마시고 싶거나 잠깐이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때, 혹은 더럽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손이 부드럽게 풀리지 않을 때. 형은 깔끔한 홈웨어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그의 카페로 가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업이 끝난 후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카페 쇼윈도 안을 기웃거리며 형이 있나 살피는 버릇을 들였다. 푹 수그린 초콜릿색 뒤통수와 길고 마른 목이 얼른 보일 때도 있었고, 낯선 손님만 몇 명씩 테이블을 채우고 있기도 했다. 그 때부터는 보이지 않는 형을 뒷전으로 넘기고 가게 주인의 작달막한 체구를 눈으로 쫓기 시작한다. 그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카운터와 쇼케이스 너머의 비슷한 위치를 지키고 서 있다.

 

그의 카페를 지나치면서 넌지시 들여다볼 때마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일관적이지만 그리 일관적이지 못해서, 녹인 초콜릿을 틀 위에 붓고 있기도 하고, 압착기에서 과일주스가 나오는 동안 김석진 씨가 가져다준 케이크를 세팅하기도 하고, 식기들을 닦기도 하고, 또 가끔은, 나와 용케 눈을 마주치고 웃어 주기도 한다. 카운터 위로 서광이 비치는 것처럼. 내가 지나가는 시간대의 특징인지 아니면 늘상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손님이 북적이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어설프게 훔쳐보다 유리창 너머로 들킨 것이 세 번을 넘겼을 때, 나는 그의 손짓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서 빈 테이블에 앉았다. 나를 대하는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단순하다. 왜 매번 나만 보면 빙긋이 웃기부터 하는지…….

 

금요일 회동의 멤버는 모두 그의 단골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꾸준한 고객은 단연 김석진 씨였다. 가게 마감 끝내고 오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는 꼭 뭘 마시고 가거든요. 요즘은 블루베리 요거트만 마셔요. 그 형은 한 가지에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주문해서. 김석진 씨 몫의 얼음을 미리 갈며 그가 해준 설명은 아무래도 쓸데없이 친절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그가 만들어준 '두 배로 진한 핫초콜릿'을 홀짝이며 카운터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 요거트 잔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김석진 씨를 훔쳐보았다. 나 오늘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냥 픽 쓰러져 자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책상 앞에 밤새도록 앉아 있는 형의 안색이 꼭 저랬는데.

 

앞치마를 벗고 주방에서 나온 그가 김석진 씨에게 다가가 고개를 수그렸다. 뭐라고 속삭인다. 김석진 씨가 놀란 강아지처럼 고개를 푸르르 흔들며 잠에서 깨자 그는 소리죽여 웃었다. 허리를 푹 숙이고 온몸을 떨면서. 뭐라고 속삭였는지는 내게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지금 어디야? 오늘 늦을 거야? 형의 메시지가 주머니 속에서 나를 달달 볶아댔다.

 

이제 와 털어놓는 것이지만, 솔직히 나는 그를 잘 모르겠다. 그는 얕은 내 인맥을 전부 통틀어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눈치를 살피면서도 나는 금요일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내 발로 나갔다. 눈치를 보는 데 그의 비중이 칠십 퍼센트쯤 된다면 나머지 삼십 퍼센트는 각각 김석진 씨와, 나의 동거인인 형의 몫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주변에 사람으로 둥그런 울타리를 쳤다. 친구가 몇 명이나 되고 발이 얼마나 넓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며칠간의 관찰로 알게 된 가장 안쪽 울타리의 구성원은 민윤기 씨와 김태형 씨, 정호석 씨를 비롯한 금요일 멤버 몇 명. 그리고 김석진 씨. 가끔 머리카락 끝에 하얗게 밀가루를 묻히고 나타나는 김석진 씨. 형 또 칠칠맞게, 머리를 털어주며 갸름해지는 그의 눈매. 김석진 씨가 그의 팔을 내리치며 웃는다. 그가 묻는다. 요거트 더 줄까? 시럽을 바꿔 봤는데, 이게 더 맛있지? 그는 아주 다정했고, 다정했으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다정했다. 내가 어쩐지 그 가운데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소외감을 자처할 만큼.

 

제발 이러지 말았으면. 제발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을 나 혼자 부풀려 짊어지지 않았으면.

 

제멋대로 이어지는 비정기적 만남이 세 번을 꺾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가 부어주는 소다맛 술을 마셨다. 말도 그 때 텄다. 생각보다 도약이 길었던 탓이다. 나와 형의 자리가 새로 끼어들면서 그들의 지정석도 조금씩 바뀌었다. 얼떨결에 내 옆자리를 꿰찬 민윤기 씨는 예민한 인상과 달리 은근히 다정했다. 이거 요새 맛이 엿같아졌더라. 민윤기 씨가 과일소주병을 저만치로 밀어 버리며 투덜거렸다. 아, 미안. 바른 말 고운 말. 하나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덧붙이고는 흰 손으로 자기 입을 툭 때린다. 나는 씩 웃고 말았다. 과제가 많다고 죽상인 김태형 씨가 정호석 씨 옆에 달라붙어 징징거리고, 김석진 씨의 옆자리가 지정석이 된 형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내 맞은편에는 카페 주인이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화두를 던졌다. 그런데 지민 씨는 왜 연애를 안 하지? 내가 알기로는 카페 찾아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던데, 번호 좀 달라고.

 

각자 나뉘어 있던 대화의 주제가 하나로 모이고, 순식간에 테이블의 관심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동조의 목소리가 일었다. 나도 봤어요, 저번에 여대생 둘이 와서 지민 씨한테 번호 물어보는 거. 줬어요, 안 줬어요? 그는 갑자기 겨냥된 화살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안 줬어요. 왜요? 예쁘던데, 지민 씨 눈 되게 높나 봐. 나는 씁쓸한 콜라 같은 올드몽크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너무 진하고 느끼했다. 김태형 씨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지민이 형은 그런 스타일보다 잘 웃고 귀염상인 여자 좋아할 것 같은데, 동글동글하고. 그러자 분위기가 좀 더 왁자해졌다. 맞아, 비슷한 말 전에도 했었지 않아? 웃는 게 예쁜 사람이 좋다고 그랬던가? 나는 지나치게 달짝지근한 술을 더 마시지 못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샌드위치를 뒤적이던 민윤기 씨가 포크 하나와 접시를 밀어주었다. 저녁 안 먹고 왔다면서. 나는 무심한 친절이 고마워 민윤기 씨의 하얀 얼굴을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맞은편 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그런 사람 좋아해요."

"……."

"저렇게 웃는 얼굴."

 

 

갑자기 조용해진다. 샌드위치 빵에 포크를 푹 찌르던 나는 급작스런 고요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게 집중된 여러 쌍의 눈. 내 앞자리에 앉아 빙긋 웃는 그와 마주치자 나는 재빨리 시선을 모로 돌렸다. 형은 술잔을 든 채 굳어 있었다. 그 옆에서 김석진 씨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나는 늘, 이런 돌발상황에 부딪치면 속절없이 당황하고 마는 쪽이다.

 

그렇지. 나는 늘 서투르지. 멀뚱히 앉아 있다 침묵을 깬 것도 내가 아니라 김태형 씨였으니. 나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서는 김태형 씨를 따라 카페 밖으로 달아났다. 그제야 천천히 테이블 수다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귀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부분의 화끈거림을 달래 주었다. 나 너무 쓸데없이 당황했구나. 그렇게 놀라는 게 더 이상해 보였을 텐데. 밤 공기가 차가워서 몸서리를 치며 그가 준 빨간 담요를 좀 더 끌어당겼다. 등 뒤에서 카페 문에 매달아 둔 손가락만한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는 대신 어깨를 움츠렸다.

 

담뱃갑과 라이터를 챙겨 나온 그가 내 옆에 나란히 섰고, 그제야 내가 힐끔 돌아보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 눈을 마주친 그는 아무 말 없이 긴 눈매부터 접었다. 하나로 맞물리는 선이 야살스러웠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해서. 왜 하필 정확히 나를 가리켜서. 나는 새 장초에 불을 붙이는 그의 옆모습을 노려보았다. 그의 키워드에 흡연을 추가해야겠다. 손님이 없을 때 아주 가끔씩 카페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생 비흡연자로 살아왔다는 김석진 씨는 그런 그를 볼 때마다 질색팔색을 했다. 그래서 그는 김석진 씨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운다. 혹시 담배 냄새 싫어해요? 그가 상냥하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찌든 냄새는 익숙했다. 형이 아주 지독한 골초였기 때문이다. 베란다에 갖다놓은 재떨이는 늘 수북한 재를 껴안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섹스했을 때 가장 고역스러웠던 게 뒤가 뚫리는 아픔도, 부끄러움도 아니라 형의 소파에 밴 담배 냄새였을 만큼.

 

그는 괜찮다는 내 반응에도 망설임 없이 장초를 바닥에 던진 뒤 짓밟아 껐다. 반도 못 피운 담배가 납작하게 짜부라졌다. 비흡연자 앞에 두고 피우긴 좀 그렇네요. 석진이 형 난리치는 것도 생각나고. 얼어붙은 입김이 연기 대신 그의 얼굴을 몽실하게 가렸다.

 

 

"저 담배 안 피우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어쩌다 보니."

"제 이름도 아직 모르시잖아요……."

"알아요. 전정국."

 

 

그가 냉큼 대답했다. 성까지는 모를 줄 알았는데. 멍청해지는 내 표정을 살핀 그가 이름 말고 다른 것도 조금 알아요, 읊조리듯 말한다. 뭉툭한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후 수업만 있는 날, 금요일은 공강. 건망증이 있어서 가끔 집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때가 많고. 저번엔 테이블에 핸드폰도 두 번인가 두고 갔었죠. 박시하고 편한 옷에 빨간색을 좋아하고. 하루라도 헬스장에 안 가면 못 견디고요. 다 잘 먹는데 쓴 맛은 싫어하죠. 아마 김남준 씨랑은……사귄 지 몇 년은 된 것 같고. 내 귓불이 달아올랐다.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모르겠어요?"

 

 

어이 없다는 듯한 반문이 돌아온다. 그래도 그는 웃고 있었다. 외려 흡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시선을 발치로 떨어뜨렸다. 부끄러우면서도 황홀한 기분에 목덜미로 피가 쏠렸다. 그는 아직도 내가 꽁꽁 두르고 있는 빨간 담요를 보고 더 밝게 미소지었다.

 

 

"그거 따뜻하죠."

 

 

턱짓을 한다. 통통한 손가락과 달리 하관의 선이 베일 듯 날카로웠다. 고개만 주억였더니 제깍 덧붙인다.

 

 

"빨간색 좋아한다길래 집에서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이런 말에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긴 할까? 나는 그가 타고난 관찰력을 발휘해 내 침묵이 불쾌함에서 발로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는 제때 눈치챈 게 분명했다. 우물거리는 나를 보고 그의 입에서 가느다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애가 식어가는 과정. 뜨거운 물을 한 곳에 오래 담아두면 언젠가는 식고 말듯이. 연애도. 그리고 우리도. 섹스리스의 기준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얼마의 시간을 기점으로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는지 가늠이 안 되었다. 세어 보자. 형과의 섹스는 한 달쯤 전이 마지막이었다. 꼬박꼬박 체크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좀 지난 일이었다. 물론 섹스만이 사랑의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야 알고 있다. 하지만 피곤한 표정으로 담배를 더욱 자주 달고 사는 형. 내가 불러도 한 번에 쉬이 돌아보지 않는 등. 말라가는 긴 몸뚱이. ……보이지 않는 벽.

 

내가 매일 헬스장을 드나드는 동안 형은 툭하면 끼니를 거르고 잠을 설치면서 점점 야위어 갔다. 운동을 싫어한다기보다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내가 언제부터 형에게 자잘한 일상의 공유를 바라지 않게 되었는지. 하지만 아무리 글이 거지같이 안 풀려도 밥은 먹어야 산다. 형이 부엌을 등지면서 요리는 자연스레 내 몫으로 넘어왔다. 해산물만 제외하면 형의 입맛은 까다롭지도 않고 무난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제 끓여놓은 국과 본가에서 보내온 반찬으로 간단히 아침상을 차린다. 방문을 노크했지만 형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리어 예민하게 말한다.

 

 

"난 배 안 고프니까 너나 챙겨 먹어."

"형이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을래."

 

 

내 단호한 말투에 형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다 말고 우뚝 멈추었다. 산발이 된 초콜릿색 머리결이 엉망이었다. 왜 자꾸 스스로를 학대하는 거야. 몰아붙이지 마,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줘. 그런 거 형한테 어울리지도 않는데. 형은 두 손을 책상 위에 얹고 구부정한 허리를 약간 폈다.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나는 아침이 담긴 쟁반을 아무데나 내려놓고 걸어가 형의 목을 끌어안았다. 목이 긴 형은 초커가 잘 어울렸다. 생일선물에 곁들여 주었던 게 이 방 어딘가에 아직 있을 텐데. 푸슬푸슬한 머리칼에서 샴푸 냄새가 났다. 나는 형의 정수리에 내 턱을 비볐다.

 

 

"나랑 자자, 형."

"……."

"남준이 형."

 

 

점점 낮아지는 내 목소리에도 형은 부동을 지킨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몇 년을 살 비비고 지내왔는데 이 정도는 내게도 좀 말해 줬으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나는 형에 관하여 아는 것보다 확신할 수 없는 게 점점 더 늘어나고, 그 기점조차 판단이 불가능하고, 그럼에도 이상하지. 생각만큼 비참하거나 절망적이지 않다는 게.

 

 

"……무슨 좋은 일이 있길래,"

 

 

대놓고 끼를 부려. 그러면서 형이 드디어 나를 온전히 바라보았다. 꽁꽁 두르듯 껴안은 내 팔을 풀고 일어서서 나를 침대 쪽으로 민다. 나는 뒷걸음질치며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해서 티셔츠를 벗었다. 침대 끄트머리에 무릎 뒤가 닿고 이내 무게중심이 뒤로 쏠렸다. 나는 기꺼이 푹신한 이불에 온몸을 파묻었다. 뒤척이며 자세를 고치는 동안 위로 올라온 형이 목덜미를 깨물었다. 이 버릇은 죽어도 고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나도 나지만 형도 참 형이다. 딱히 달라지지 않는 패턴대로 차근차근 손을 옮겨 주무르고, 매만지고, 쓸어내리던 형이 내 허벅지를 넓게 벌렸다. 한 손으로는 내 것을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내 앞머리를 뒤로 넘겨 준다. 손끝에 또 담배 냄새가 옮아 있다. 지적하면 판이 깨지겠지. 그래서 꾹 참았다. 담배 냄새를 병적으로 못 견디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몸을 섞을 때만큼은 지독히 거슬렸다.

 

형과 잘 때에는 그럭저럭 고통이 없는 편이었다. 둘 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몸이라 아픔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오래 전에 체득했다. 삽입하는 과정도 순조로웠다. 형은 글을 쓸 때처럼 성실하게 나를 애무했다. 후희보다 전희에 더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빠지는 숨을 할딱이며 마음 놓고 늘어져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는 사정감이 점점 짙어질 무렵에 형이 한쪽 다리를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다음 순간 나는 꿰뚫리는 고통에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마터면 혀를 반 토막낼 뻔했다. 내 외마디에 까물짝 놀란 형이 멀뚱한 얼굴로 내려다본다.

 

 

"아파……."

"미안."

"진짜 아팠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불시에 찾아온 고통 때문에 울컥 짜증이 났다. 드물게도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허벅지를 고쳐 잡았다. 미안. 그러면서 허리를 깊이 수그린다. 땀이 찬 형의 손바닥이 내 등 아래로 기어들어온다. 아주 단단히 맞물리는 느낌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손을 더듬어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움켜쥐었다. 손톱을 깎은 지 오래 되었으니 지금 형의 목을 부여안는다면 생채기를 남길 게 틀림없었다. 허벅지를 쥐어뜯는 형의 손끝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고통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

 

꼭 닫힌 욕실 문 너머로 형의 샤워 소리가 들려왔다. 노곤함에 못 이겨 늘어져 있던 나는 문득 그 때까지 손에 구겨쥐고 있던 것을 들어올렸다. 카페에서 빌렸던 그의 빨간 담요가 죽 끌려온다. 까먹고 집까지 들고 온 게 며칠 전인데 아직 못 돌려줬다. 코를 묻으니 그 때의 화이트 머스크 향이 희미하게 풍겼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런 빨간색. 나는 이런 빨간색을 좋아하는 게 아닌데. 샤워기 소리가 끊기는지 귀를 기울이며, 두툼한 담요로 내 몸을 강보처럼 감쌌다. 땀이 반쯤 식은 몸에 부드러운 것이 감기자 기분이 야릇해졌다. 좋다. 내 맨몸을 감싸는 그의 냄새. 그도 담배를 피우니까 손끝에 틀림없이 담배 냄새가 배어 있을 거야. 어쩌면 그와 섹스를 해도 이런 냄새가 날지 몰라. 머스크 향과 뒤섞인 담배 냄새는 좀 맡을 만할지, 나는 혼자 궁금해졌다.

 

 

"못 보던 건데."

 

 

따뜻한 온기를 껴안고 나온 형이 나를 힐끔 곁눈질하고 물었다. 가운 차림으로 헤어드라이기를 찾는지 서랍을 뒤적인다. 활짝 열린 욕실 문 안쪽에서 더운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때까지 그의 빨간 담요를 두르고 누워 있었다.

 

 

"박지민 씨가 빌려줬어."

"카페 사장?"

"응."

 

 

형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이름은 이상하게 귀에 설었다. 빌려줬다고…… 형은 나지막하게 혼잣말하며 서랍을 닫았다. 나는 담요에 코까지 파묻고 눈을 깜박였다. 무언가 할 말이 더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은 입을 다물고 욕실로 돌아가 거울 안의 수납공간을 뒤질 뿐이다. 그의 친절이나 우리가 형 모르게 쌓아온 친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한 마디도 묻지 않는다. 맥이 빠진다. 나는 조용히 담요를 걷고 일어나 갈아입을 속옷을 찾기 시작했다.

 

 

 

 

 

  초겨울비가 오후부터 진탕 쏟아졌다. 눈보다 비가 오니 외려 더 추웠다. 형은 아침 일찍 원고를 넘기고 겸사겸사 친구를 만나러 갔다. 나는 궂은 날씨를 핑계로 방에 처박혀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이나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창문 바깥쪽이 진탕 젖어 있었다. 형이 우산을 챙겨가지 않았을 텐데. 나도 이래저래 섬세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우리 둘만 놓고 비교한다면 형 쪽이 훨씬 열세였다. 똑같이 힘이 좋았는데 형은 유독 무언가를 잘 부숴먹고 잘 빠뜨렸다. 덕분에 형의 건망증을 서포트하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우산이면 우산, 핸드폰이면 핸드폰, 책이면 책, 열쇠면 열쇠.

 

점퍼를 껴입고 큰 장우산 하나를 챙겼다. 비가 오면 그걸 핑계로 형과 한 우산 아래서 바짝 붙어다닐 수 있다. 마실 나가는 거리라고 맨발에 쪼리만 꿰어 신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나는 허술한 내 옷차림을 후회했다. 사거리까지 걸어가는데 흠뻑 젖은 발가락이 몹시 시렸다. 차라리 운동화를 신고 나올 걸 그랬다. 되돌아갈 수도 없어서 꿋꿋하게 걸으니 차츰 길이 넓어지고 사람들과 차가 많아졌다. 저만치에 아이보리 색으로 반짝이는 김석진 씨의 케이크 하우스 간판이 보였다. 길목이 좋은 곳에 자리해서 늘 손님이 많았다. 이따금 방송국에서 취재도 온다고 들었다. 케이크가 맛있기도 했지만, 웬만한 연예인 부럽지 않을 만큼 잘생긴 파티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온 시내버스에서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맨 마지막으로 길쭉하고 마른 인영이 나타났다. 형이 분명했다.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에 실루엣이 까맣게 비쳤다. 역시나 우산 없이 빈 손이다. 형, 부르려는 찰나 형이 후두둑 떨어지는 빗물을 손으로 대충 막으며 지척에 있는 김석진 씨의 가게 문을 쑥 열고 들어간다. 나는 잠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다 빗물을 사방으로 튕기며 서둘러 쫓아갔다.

 

잘 닦은 유리창 안으로 가게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내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늦은 시간인데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알바생도 없고, 김석진 씨 혼자 카운터에서 빌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조명은 반 정도 꺼졌다. 나는 두꺼운 블루종을 입은 형의 뒷모습을 확인하고서도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반갑게 고개를 드는 김석진 씨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자연스레 손으로 정리해 주는 형 때문에. 형의 얼굴에서 툭툭 떨어지는 빗물을 본 김석진 씨가 안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 왔다. 그의 입술이 빠끔거리는 것을 어렵잖게 읽을 수 있었다. 다 젖었네요. 김석진 씨의 화사한 미소, 조심스럽게 형의 뺨을 닦아내는 손길, 나는 숨을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형이 웃고 있네.

 

쫓기듯 우리 집 아래의 카페까지 되돌아갔다. 정신없이 걷기만 했다. 도중에 누군가와 어깨도 두어 번 치이고, 웅덩이를 잘못 밟아 발목까지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카페 앞까지 도착했을 때에야 은은한 할로겐 불빛에 비친 내 몰골을 돌아볼 수 있었다. 초라했다. 멀쩡히 쓰고 있던 장우산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구정물이 묻어 너저분한 맨발에 대충 껴입은 후드점퍼, 무릎 위로 껑충 올라오는 추리닝 반바지. 멍청하고 창백한 얼굴. 그리고 흰 조리셔츠와 까만 앞치마 차림으로 예쁘게 웃고 있었던 김석진 씨. 형이 나를 등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의 표정을 제대로 보았더라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카페 문에 매달린 놋쇠 종이 딸랑딸랑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언제 나를 발견했는지 후다닥 뛰어나온 카페 주인이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웠다. 눅눅한 커피 냄새가 확 풍기고 우산에 부딪친 빗소리는 한층 거세졌다. 꿈인가. 실은 내가 형을 기다리다 말고 침대에서 깜빡 잠들었는데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다 젖은 내 뺨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우산도 안 가지고 나왔어요? 이 날씨에? 그는 걱정을 담은 책망으로 묻는다. 멍하니 빈 손을 내려다보는데 그가 내 뺨을 아프지 않게 톡톡 내리쳤다. 정신 차려요, 무슨 일 있었어요? 학교를 벌써 졸업한 지 오래일 그가 겨우 새내기인 내게 아직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사귀는 줄 알았어요."

"네?"

"김석진 씨랑……."

 

 

그 쪽 말이에요.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간 내 말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예요? 석진이 형이랑 저요? 그러면서 짧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킨다. 의아함과 당혹으로 가득 찬 얼굴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한참 잘못 짚었구나. 민망하고 우울했다. 그의 얼굴을 버젓이 마주보고 있기도 불편했다. 죄송해요, 제가 오해했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서둘러 우산 밑에서 빠져나가는데 그가 득달같이 따라붙었다. 따뜻하고 강건한 손으로 내 팔목을 꼭 쥔다.

 

 

"어디 가요, 비 맞는데."

"괜찮아요. 집에 갈 거예요."

"아닌 것 같은데."

"진짠데요."

"어디서부터 비 맞고 왔어요? 우산 가져가요."

"집에 갈 거라니까요, 손 좀 놔주세요."

 

 

나는 울컥 언성을 높였다.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엉망진창일 내 표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거짓말. 내 앞머리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시야를 방해했다.

 

 

"거짓말 못하게 생겼는데 진짜로 못하네요."

"……."

"그냥 집에 갈래요, 아님 핫초코 한 잔 마시고 갈래요?"

 

 

나는, 나는 거짓말에 천부적인 소질이 없을지언정, 그렇게 순진한 것도 아니었다. 뻔뻔함을 무기로 삼을 재량은 얼마든지 있었다. 형에 관련된 일만 빼고. 형은 내 아킬레스건이니까. 그리고 방금 예외의 경우가 한 가지 더 늘었음을 깨달았다. 마감 준비를 다 끝낸 카페 안쪽에서 반으로 자른 베이글을 데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히터를 다시 틀어서 따뜻하고 건조한 훈김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손과 발이 저릿저릿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르는데 그가 뜨거운 초콜릿이 담긴 잔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는다. 이제 저 미소는 차라리 습관처럼 느껴진다. 아까의 황당한 소리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는다. 내게 이만큼 관대한 사람이 지금껏 몇 명이나 있었던가. 비 맞고 쏘다닐 만큼 힘든 일 있었어요? 그는 몹시 다정하게 물었고, 내가 대답하지 않자 한 번 더 질문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나요? 나는 뭉게뭉게 옅은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김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카페 창 밖을 가리켰다.

 

 

"저기 바깥 좀 같이 봐주세요."

"……?"

"오 분, 아니 십 분 안에 우리 형이 보이면 아무 일도 아닌 거고,"

"……."

"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아마……."

 

 

그가 미묘해진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가, 빗물에 일그러진 창 밖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나를 향한다. 땡. 전자레인지의 알림음이 경쾌하게 울렸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침묵에 돌입했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는 이제 웃지 않는다. 그의 키워드에……새로이 몇 가지를 더 추가해야겠다. 입을 다물지 훅 다가오는 무게, 더 이상 모호하지 않은 뚜렷함, 냉랭한, 무표정.

 

나의 침묵을 그는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다. 우리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창 밖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형은 그가 다 식은 핫초콜릿을 개수대에 부어버릴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sho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광의 번견(番犬) 1  (0) 2016.07.09
여고생 조각  (4) 2016.07.03
안식일  (3) 2016.05.01
로드킬  (4) 2015.09.05
바벨탑의 꼭대기에서  (18) 2015.07.13